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콜라이 바투틴 (문단 편집) === 최후 === 1944년 2월 바투틴은 다시 코네프의 제2 우크라이나 전선군과의 협격을 통해 카메네츠-포돌츠크 일대의 독일 제1 기갑군을 포위하기 시작했다. [[카메네츠-포돌츠크 포위전]]이 한창이던 그때 슬라브타 일대를 시찰하던 바투틴은 [[우크라이나]] 반데라주의 [[반란군]][* 이들에 대해서는 [[스테판 반데라]] 문서 참조.] 부대의 공격을 받았다. 바투틴은 게릴라의 총에 맞아 치명상을 입고 키예프의 군 병원으로 이송되었다.[* 이에 주코프가 바투틴의 지휘권을 넘겨받아 제1 우크라이나 전선군을 직할로 지휘했다.] 바투틴은 6주간 상처와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1944년 4월 15일 43세 나이에 전사했다. 그의 형제인 아파나시와 세묜도 1944년 2월과 3월에 전사하는 바람에 바투틴의 어머니 베라는 두 달 사이에 세 아들의 장례식을 치러야 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